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슬람 모더니즘 (문단 편집) === 소련의 자디드 운동 ===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은 중앙아시아의 경제를 크게 발전시키지는 못했지만, 소련 내 여타 지역에 뒤지지 않는 수준의 대중교육을 실시함으로서 교육 면에서는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자디드 운동가들이 세워놓은 토대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초창기 소비에트 정권은 이슬람 자체를 소련 내에서 일소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는데, 자디드 운동가들이 없었다면 여기에서 적당한 타협이 불가능했다. 타협의 결과 소련 내 무슬림 거주지역의 교육투자와 그 성과 하나만큼은 [[포르투갈]], 영국이나 프랑스의 식민지 지역보다 월등했는데, 1930년대에는 초등교육이 의무화되고 10세에서 30세 사이의 성인을 대상으로 [[문맹]]퇴치운동이 전개되었다. 당시에는 프랑스의 [[북아프리카]] 무슬림 식민지에서 초등학교 취학률이 6% 정도를 자랑하던 시절이다. 소련의 무슬림 지식인들은 언어와 문학의 근대화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1926년 소비에트 정권은 [[바쿠]]에서 개최된 [[튀르크어]]학 대회에서 아랍 문자 사용을 금지하는 대신,[* 기존의 중앙아시아의 무슬림 [[율법]]학자들을 숙청하기 위한 조치였다.] 자디드 운동가들과 타협 하에 '''터키와 마찬가지로 앞으로 [[라틴 문자]]를 사용하도록 지침을 변경하였다.''' 1938년 이후로 [[스탈린]] 정권의 러시아인 동화 정책이 추진되며 [[러시아어]]가 의무 과목이 되긴 하였으나,[* 1939년 이후에는 라틴 문자 사용이 금지되고 [[키릴 문자]]로만 표기하도록 정책이 다시 변경되었다.] 이는 오히려 [[부족주의]]와 [[지역감정]]이 어느 정도 극복되고 언어([[우즈베크어]], [[아제르바이잔어]], [[카자흐어]], [[타지크어]], [[키르기스어]], [[튀르크멘어]], [[바시키르어]] 등등)에 기반한 민족 정체성이 확립되는 계기가 되었다. [[볼셰비키]]의 숙청 하에서 살아남은 자디드 운동가들은 무슬림 소수민족 고유의 역사, 언어, 구전문학, [[서사시]], [[미술]]을 재발견하고 발전시키는데 열심이었다. 따라서 스탈린 사후에는 다양한 민족문화가 부활되거나 재창조되었다. 중앙아시아와 동유럽 무슬림들의 구전문학과 서사시는 계속 보존되었고, 현대 문학의 형태로 재해석이 이루어졌다. [[흐루쇼프]] 시대 이후 다양한 민족 언어로 된 잡지와 신문이 출간되었다. 어문학적, 고고학적 연구를 통해 중앙아시아 민족들의 역사가 본격적으로 연구되면서 중앙아시아 내 여러 민족들의 역사관과 민족주의가 현대적으로 확립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